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을 것이다.
동네 친구 녀석이 고무 공을 가지고 왔다.
작은 공터에서 축구를 하다가 내가 슛한 공이 신작로로 넘어가고...
고물 트럭 바퀴에 깔리면서 빵! 터져 버렸다.
그 골목의 대장으로서 난 아이들 앞에서 공포했다.
"내가 찼으니까 공 살 돈 내가 물어줄게"
공 주인 녀석이 말했다.
"그러면 3개월 내로 갚아"
나는 너무 심하다는 표정으로 공 주인 녀석을 바라보며 외쳤다.
"야! 1주일로 하자!"
나는 그때 '일'과 '주'만 알았지 한 달이라는 '월'의 개념이 없었다.
"친구 사이에 같이 놀다가 그런건데 3에 다 갚으라니 심하잖아. 적어도 7은 줘야지."
이게 내 생각이었다.
어찌됐든 그때부터 1주일 간 나는 책임감이 투철한 대장으로 인정받았다.
1주일 뒤 공 살 돈 물어 줬냐고?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인 것을...
공과 함께 즐거웠다.
초등학교 때의 가장 즐거운 기억은 토요일에 있다.
일찍 등교하면 아침 조회 전에 친구들과 신나게 공차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 고, 대학에서의 즐거운 기억들 중 상당 부분은 공으로부터 나왔다.
공과 함께 성장했다.
즐거움뿐만 아니라 성장의 기쁨도 공을 통해 얻었다..
특히 대학에서 농구 동아리를 만들고 활동하면서
개인으로서도 팀으로서도 온갖 사건을 겪으면서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공과 함께 맛 본 쓴맛도 만만치 않았다.
공과 함께 한 시간이 즐거움과 성장의 기쁨처럼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 악물고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아라고 수십차례 다짐하면서 뛰었지만
결과는 패배, 그것도 비참한 패배였을 때는...
40대 중반부터 일에 잡혀 살다 보니 공과 멀어지게 되었다.
더불어 즐거움도 성장의 기쁨도 인생의 단맛과 쓴맛도 공과 함께 사라져간 듯 하다.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라 하니 공과 다시 친해져야지.
내 가슴 깊은 곳에 쳐박아 둔 반짝거리던 축구화 다시 한번 꺼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