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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두뇌구조를 바꾼다는 서울대 강봉균 교수님의 글

배움배움이 오리쌤 2009. 6. 12. 13:32

공부할 수록 똑똑해지는 이유, 공부하면 두뇌의 구조가 바뀐다는 강봉균 교수님의 글입니다. 과학동아 2004년 5월에 실린 글입니다. 허락없이 글을 옮기는 일은 저작권법에 저촉되지만 좀더 많은 학생들이 좋은 글을 볼 수 있으면 하는 오리쌤의 착한(><;;) 의도를 이해해 주시리라 믿으면서 글을 옮깁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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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수록 똑똑해지는 이유       과학동아 2004년 4월

 

 

강봉균/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kaang@snu.ac.kr

 

기억을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집이 어디인지, 부모가 누구인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은 드물더라도 시험 볼 때 어떤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애를 태운 경험은 대부분 있을 것이다. 분명 머릿속에 들어있는데 왜 생각이 안나는지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 중요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심지어 습득한 정보를 자기 몸에 문신을 하면서까지 기록하곤 한다. 단기기억은 가능하지만 장기기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화번호가 7자리인 까닭은?

 

우리가 배우는 것들은 크게 서술정보와 비서술정보로 나뉜다. 서술정보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정보다. 즉 학교 공부, 영화 줄거리, 장소나 위치, 사람 얼굴처럼 사실이나 사건 같은 정보로서 외현정보라고도 한다. 반면 비서술정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보다. 몸으로 체득하는 운동기술, 습관, 버릇, 반사적 행동 등이 포함되며 감춰져 있다는 의미에서 암묵정보라고도 한다.

 

서술정보는 비교적 쉽게 획득되지만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만 기억이 가능하며 기억 내용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비서술정보는 때로는 고된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얻어지지만 기억 내용이 정확하게 표현되고 기억할 때 의식이 필요하지 않다.

 

어린 시절 사고로 뇌가 손상된 후 심한 간질을 앓던 한 캐나다인은 뇌의 양쪽 측면인 내측두엽을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의 지능지수(IQ)는 수술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수술을 받고 나서 그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금방 보거나 들은 내용을 수분 동안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새로 이사간 집을 찾지 못하고 수술 전의 옛집만을 기억했다. 그러나 수술 후 처음 배운 테니스 실력은 제법 향상됐다. 비록 언제 어떻게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심지어 자기가 배운 적이 있는지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했으나 그는 테니스를 잘 쳤다. 즉 테니스 기술 같은 비서술기억은 오래 유지되나 이사간 집 주소 같은 서술기억은 오래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환자의 뇌에서 절개된 내측두엽에는 해마와 그 주변 조직들이 포함돼 있다. 그렇지만 내측두엽을 떼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술 전 기억을 모두 회상해냈다. 내측두엽이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는 아닌 것이다.

 

그럼 오랫동안 기억할 내용이 저장되는 곳을 어디일까. 바로 대뇌피질이다. 내측두엽으로 들어온 서술정보는 해마와 그 주변 조직들에서 몇주 동안 일시적으로 머무는 동안, 쪼개져 신경정보신호로 바뀌고 어떻게 나눠 저장될 것인지가 결정된다.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도록 서술정보를 조직화하는 이 과정을 암호화 단계라고 한다. 의욕적인 학습자세는 이 과정을 수월하게 해준다. 기존에 저장된 정보와 유사한 경우 쉽게 연결되므로 암호화가 더 잘 일어난다.

 

내측두엽은 대뇌피질의 광범위한 영역과 신경망을 통해 연결돼 있어 이 같은 단기기억 정보를 대뇌피질의 여러 부위로 전달한다. 이렇게 정보가 분산저장되는 과정은 수면 중에 활발히 일어난다는 학설도 있다.

 

대뇌피질에서 정보는 같은 범주로 분류되는 내용끼리 같은 영역에 저장된다. 예를 들어 동물에 대한 정보와 무생물에 대한 정보가 저장되는 장소가 다르며, 동사와 명사가 저장되는 장소가 다르다.

 

다음 단계에서는 기억과 관련된 유전자가 발현돼 단백질이 만들어지면서 기억 내용이 공고해져 오랫동안 저장된 상태를 유지한다. 기억을 회상할 때는 뇌 여기저기에 흩어져 저장돼 있는 정보들을 끄집어내 다시 짜맞춘 후 원래의 내용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뇌가 저장할 수 있는 장기기억 정보의 용량은 거의 무제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거나 어떤 일을 생각할 때 순간적으로 잠시 저장됐다가 곧바로 지워지는 작업기억은 그 용량에 제한이 있다. 예를 들어 114에 문의해 알아낸 전화번호는 전화를 걸기 전까지 잠시 잊지 말아야 한다. 이때 일시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전화번호 숫자는 7자리 정도다. 이 일을 담당하는 것은 뇌의 전전두엽에 있는 신경세포(뉴런). 이들은 작업기억 정보가 들어온 후 분비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또는 글루타메이트에 반응해 정보의 내용을 저장한다.

 

한편 비서술기억은 운동기술에 숙련되는 과정, 계속적인 자극에 둔감해지는 습관화, 이와 반대로 한번 자극을 받은 후 그와 비슷한 자극에 계속 반응하는 민감화와 같이 의식이 관여하지 않는 기억이다.

 

조건화 학습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개가 종소리만 들리면 침을 흘리게 했던 러시아 과학자 이반 파블로프고전적 조건화는 종소리라는 청각정보와 음식이라는 자극이 학습을 통해 연계된 결과다. 또한 미국 컬럼비아대의 쏜다이크 교수는 보상에 대한 반응과 자극이 연계되는 작동적 조건화라는 학습 형태를 처음 시도했다. 실험 상자 속의 쥐가 페달을 밟을 때 음식이 나오는 것을 우연히 알고 나서 페달을 눌러 음식을 찾아먹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조건화 학습은 서로 다른 뇌 신경망이 연합돼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페달을 누르는 것과 같은 기술은 선조체나 소뇌에 저장되며, 습관화나 민감화 기억은 감각이나 운동체계를 관장하는 신경망에 저장된다고 알려져 있다. 또 비서술기억 중 감정이나 보상작용 또는 공포와 관련된 기억은 편도체에 저장된다.

 

반복 학습으로 뇌 부피 증가

 

바다달팽이가 자극을 단기간 기억하는 경로 칸델 박사는 바다달팽이를 이용한 실험으로 단기기억 경로를 밝혀냈다. 피부에 있는 호흡관을 자극하면 감각뉴런이 이 정보를 운동뉴런으로 전달해 아가미가 수축한다. 꼬리에 센 전기자극을 가하면 촉진뉴런이 활성화돼 감각, 운동뉴런의 신호 전달을 촉진시킨다. 그러나 이 반응은 수시간을 넘도록 기억되지는 못한다.

 

기억 정보는 어떤 경로로 전달될까. 최근 많은 학설이 나왔지만 그 중 기억에 의해 뉴런 간 연결구조인 시냅스에 변화가 생긴다는 학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간의 뇌에는 약 1천억개의 뉴런이 존재하는데 뉴런 1개당 수천개의 시냅스를 형성한다. 따라서 뇌에 있는 총 시냅스의 수는 1014-1015개나 된다. 뇌에는 이렇게 수많은 시냅스로 이뤄진 다양한 신경망이 복잡한 그물처럼 형성돼 있다.

 

이런 신경망의 패턴들은 뇌의 특수한 기능을 만든다. 학습을 하면 신경회로망을 구성하는 시냅스에 일정한 물질적, 구조적 변화가 일어난다. 우울증과 약물중독 같은 뇌 질환도 시냅스의 변화와 관련 있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시냅스는 신호를 발생시키는 시냅스전 뉴런과 신호를 받아들이는 시냅스후 뉴런, 그리고 두 뉴런 사이의 좁은 간격, 즉 20-50nm(나노미터, 1nm=10-9m)정도 벌어져 있는 시냅스틈으로 구성된다.

 

시냅스전 뉴런에서 전기가 발생하면 시냅스 말단에서 시냅스틈으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이는 시냅스후 뉴런의 수용체를 자극해 전기를 발생시킨다. 결국 시냅스전 뉴런에서 시냅스후 뉴런으로 전기신호가 전달되는 것이다. 뇌가 작동하는 이유는 시냅스로 이뤄진 신경망을 통해 이렇게 신호가 전달돼 정보처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시냅스는 수많은 정보를 끊임없이 주고받는 뇌 속의 초고속 반도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어떤 신경망의 어떤 시냅스들이 작용해 결과적으로 어떤 신경세포를 자극하느냐만이 다를 뿐이다.학습에 의해 시냅스에 일정한 변화가 생기는 것을 ‘시냅스 가소성’이라고 부른다. 그 중 시냅스 촉진과 시냅스 강화는 가장 많이 연구된 시냅스 가소성 모델이다.

 

시냅스 촉진은 바다 달팽이 군소(Aplysia)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우리나라 남해와 동해 연안의 얕은 바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군소는 지금까지 알려진 생명체 중 가장 큰 신경세포를 갖고 있다. 군소의 신경계를 이용한 학습과 기억 연구는 30여년 전부터 컬럼비아대 칸델 교수를 주축으로 꾸준히 진행돼 왔으며, 그는 이 업적으로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군소의 피부에 있는 호흡관을 자극하면 아가미가 수축한다. 이 반응은 피부에 연결된 감각뉴런의 정보가 아가미 수축을 담당하는 운동뉴런으로 전달돼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군소의 꼬리나 머리 피부에 이보다 센 자극을 가하면 아가미가 더 많이 수축한다. 센 자극을 주면 감각뉴런에 영향을 주는 새로운 촉진뉴런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촉진뉴런은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을 분비해 기존 신경망의 시냅스를 자극한다. 그 결과 감각뉴런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더 많이 분비돼 운동뉴런으로 신경전달이 효과적으로 일어나, 최종적으로 아가미 근육이 더 활발히 수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일어난 수축반응은 길어야 수시간을 지탱하지 못한다. 즉 촉진뉴런에 의한 현상은 단기기억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학습 내용을 기억하는 기간이 긴지 짧은지는 학습의 강도에 달려있다. 군소에 동일한 자극을 반복적, 습관적으로 가하면 이 자극은 장기기억화 된다. 군소의 피부에 자극을 5회 이상 반복하면 이 정보는 일시적으로 촉진뉴런을 활성화시키는 단계를 넘어 감각뉴런의 핵 속으로까지 전달된다. 이렇게 전달된 신호는 뉴런의 핵 속에 있는 다양한 기억 관련 유전자를 발현시킨다. 그러면 장기기억에 관여하는 단백질과 신경전달물질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감각뉴런의 시냅스를 강화시켜 자극 정보를 오래 기억하게 한다.

 

기억 연구의 또다른 모델인 시냅스 강화는 전기신호가 시냅스에 충분히 전달돼 시냅스의 강도가 향상되는 현상이다. 이때는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의 일종인 NMDA 수용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NMDA 수용체에 NMDA가 결합한 후 열린 통로로 칼슘이온이 들어와 다양한 효소를 활성화시켜 시냅스를 강화시킨다. 이런 현상은 서술기억에 중요한 해마나 감정 또는 공포 기억에 관여하는 편도체를 비롯해 다양한 대뇌피질의 신경망에서 관찰된다.

 

칼슘 통과 능력이 우수한 NMDA 수용체의 유전자를 이식받은 쥐는 다른 쥐에 비해 똑똑해진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반대로 시냅스 강화에 관여하는 효소의 유전자를 제거하면 학습능력이 떨어진 쥐가 탄생하기도 했다.

 

시냅스 촉진이나 강화 현상이 일어나면 기존에 있던 시냅스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더 많이 분비되거나, 신경전달물질과 결합하는 수용체 수가 많아진다. 그러면 정보를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오랫동안 반복적인 학습을 하면 시냅스 수가 많아진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시냅스가 많아지면 전체 뉴런의 부피가 증가한다. 따라서 일부분이 확장되는 것과 같이 뇌 구조가 변하게 된다.

 

실제로 원숭이에게 특정한 학습을 반복적으로 시켰더니 뇌의 일부가 미세한 정도로 확장됐다. 인간의 뇌에서도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새로운 사실을 배울 때마다 뇌의 미세한 구조가 조금씩 변하고, 이런 과정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면서 자아개발이 이뤄진다. 즉 인간은 일생 동안 신장이나 체중 같은 외형적 변화뿐만 아니라 경험과 학습을 통한 뇌의 변화도 겪는 것이다.

 

소개:  뇌기능 연구 프론티어 사업단 제공

강봉균 교수님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에릭 칸델 박사로부터 1992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생명체의 가장 복잡한 기관인 뇌를 연구중이십니다. 기억이나 감정 같은 추상적인 정신활동을 생물학적 언어로 밝히고 싶다는 강 교수님은 “뇌를 연구하다 보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어 철학적인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고 말하십니다. 많은 후배 과학자들이 ‘노다지가 잔뜩 들어있는 금광’인 뇌 과학에 도전할 것을 바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