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습학이란 ? ****/기억술의 역사

기억법(기억술)의 역사 5. - 동서를 교류시킨 마테오 리치의 기억술

배움배움이 오리쌤 2009. 8. 3. 01:53

 

기억술의 역사에서 마테오 리치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1552년 이탈리아의 마체라타에서 출생한 리치는 예수회 선교사다. 1571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1582년 동양의 마카오에 내항하여 가톨릭 포교를 시작하였다. 중국을 포함한 최초의 세계 지도인 <만국여도>를 그렸는데 이 지도는 1584년 왕만에 의해 출판되었다. 1601년 베이징에 들어가 명나라 신종 황제의 정주 허락을 받고 전도에 힘쓰면서 서양 과학 기술 서적을 번역 저술하였다.

 

번역서 <기하원본> 근대 삼각법서인 <측량법의> 동심천구설을 소개한 <건곤체의> 그리스도 교의를 설명한 <천주실의> 등의 저술을 하는 데는 당시 서구에 뿌리내린 기억법의 역할이 거둔 성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조너선 스펜스가 쓴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란 책을 보면 리치 자신이 창조했던 여러 가지 기억의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기억의 이미지에 따라 리치가 살았던 이탈리아, 인도,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다. 리치는 1577년 이탈리아를 떠나 인도를 거쳐 중국에 들어갔다. 1583년에서부터 1601년까지 거기서 활동하였다.

 

리치가 중국인에게 가르친 기억술은 <기법>이라고 한다. 먼저 기억의 궁전을 짓는 것이다. 궁전 안 연회실의 네 모퉁이에 대표적인 네 개의 이미지를 세운다. 그것은 한자로 <武·要·利·好>이다.

 

武자를 대각선 방향으로 나누면 창 과(戈)와 그칠 지(止)가 된다. 武는 창으로 뜻하는 전쟁과 끝나 그침을 뜻하는 평화를 모두 함축한 글자다. 16세기 서양을 가톨릭과 신교의 대립, 이슬람 세력과의 대립으로 전쟁과 학살이 끊이지 않았다. 동양도 일본의 조선 침략인 임진왜란 등 한·중·일 삼국이 대 전란에 휩싸여 평화에 대한 갈망도 클 수밖에 없다.

 

要자는 위, 아래로 나눌 수 있다. <西女>는 곧 서쪽의 여인이다. 당시 중국 서역에는 이슬람교도가 많이 살고 그리스도 교도와 유태교까지 있었다. 리치는 서양의 3교가 유교, 불교, 도교가 뿌리내린 중국에 이질적인 서양의 종교가 수용되는 사실에 희망을 가졌다. 리치는 이런 중국, 동양의 문화에 심취되어 유학자의 옷을 입고 유학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을 쓰기도 했다.

 

利자는 좌, 우로 나누면 곡식을 뜻하는 벼 화(禾)와 칼을 뜻하는 칼 도(刀)가 된다. 곡식을 수확하는 농부의 이미지는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 행위와 직결된다. 리치는 동서양의 무역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살았는가가 종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점차 재정관리 운용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다.

 

好자는 아이를 안은 여자, 곧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기억시키는 글자다. 리치 자신은 현실에 살고 있지만 그의 영혼은 성모 신앙에 심취해있었기 때문이다. 리치는 이 네 개의 글자로 연상되는 기억의 이미지에 따라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을 한꺼번에 이해하고 되살려 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