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기억술이 크게 유행하였다. 갖가지 기억술 관련 서적들이 저작되었는데 룰루스와 피터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피터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 라벤나의 출신으로 <불사조>라는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은 초기의 기억 훈련에 관한 책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피터의 불사조에 의해 기억법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영국의 헨리3세와 프랑스의 프란시스 1세도 기억법을 사용했다. 셰익스피어도 이 기억법을 활용했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그의 <지구극장>은 <기억극장>으로 불리어졌다.
이러한 기억에 대한 기술적 탐구는 철학이나 논리학에 결부되어 연구가 거듭되었으며 수학이나 백과사전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6세기 들어와서 소르본느 대학에 기억법 강좌가 실시되었을 때 담당교수인 라빈헤타는 감각적 학습 내용은 시모니데스와 아퀴나스의 고전적 기억술을 사용하고 지적인 학습 내용은 룰루스의 방법을 사용토록 권장하였다.
중세에 들어와서는 종교적인 독선으로 인간의 상상력이 무시되었지만 이후 인간의 이성에 의해 상상력의 복원이라는 상상력의 재평가와 더불어 기억법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더욱 기억법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연적으로 발휘함과 동시에 학습능력을 크게 향상시킴으로 극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1888년도에 철학자로서 기억법의 선생이기도 했던 윌리엄 스톡스의 <기억>이란 책이 출판되었다. 스톡스는 확신하였다. <기억법은 멀지 않아 하나의 확립된 학술로서 널리 인정되게 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단호히 주장한 것이다. 이때부터는 시간적, 공간적인 고전적 기억술에서 더욱 발전되어 추상적, 언어적 기억술의 체계로 들어가게 된다.
근대 후기에 들어와서 기억술은 다시 암흑기로 접어들며 위기를 맞게 된다. 과학의 발달과 산업 혁명으로 물질만능 사회가 이루어지면서 책과 노트가 그리고 필기구가 쏟아져 나왔으며 더욱이 <기억보다 이해>를 중시하는 교육적 풍토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술이 20세기 초에는 극장의 쇼 무대에서 오락의 소재로 쓰여 지며 희극배우들이 무대에서 암기의 재주를 부리는 <멘탈 트릭>을 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텔레비전에서 기억의 천재들이 출연하여 놀라운 그들의 재주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의 전형인 것이다.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한 기억술은 이처럼 가볍게 어떤 목적에 사용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기억은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는 중요한 명제로써 철학자들의 끊임없는 화두가 되어 정신의 한 숙제로 자리 잡아 연구 발전을 거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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