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배우며...

9. 책을 좋아하십니까?

배움배움이 오리쌤 2020. 8. 18. 21:53

책을 좋아하십니까? 돌이켜 보면 책은 한 때 가장 친한 친구였고 애인이었고 선생님이기도 했지만 또 어떤 때는 사돈의 팔촌이었고 원수이기도 했습니다. 책은 당신에게 어떠한 존재인가요?

 

국민학교때는 책을 접하기 어려웠습니다. 언제 누가 사줬는 지도 모르는 빳빳한 종이의 그림책으로 집을 지어 놀던 기억이 납니다. 4학년 때는 선생님이 책을 읽어 주시고 그 내용을 맞추는 시험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운동장 조회때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고전 시험 1등 상을 받고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5학년, 6학년때는 학교에서 주말마다 책을 빌려 줬었는데 두 권씩 타 오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는 무협지에 푹 빠졌습니다. 셋째 형이 빌려 온 난생 처음 보는 무협소설을 읽고는 한참을 환상 속에 빠져 살았습니다. 고등학교때는 친구들이 대입 참고서를 파고 있을 때 나는 문학 책을 읽었습니다. 대학은 고 2때 일찌감치 포기했하고 그 보상을 운동과 문학 책에서 찾았던거죠. 이때 책을 좀 더 빨리 읽으려고 속독을 나름대로 열심히 훈련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3때 학교 앞 작은 서점에서 발견한 해리 로레인의 '메모리 북'은 이후 내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학교때는 기억법을 공부하느라 관련된 책을 샅샅이 찾아 읽었습니다. 색채심리학과 기호학 책, '메타인지'라는 용어를 처음 알게 된 어느 대학원 논문집, 분리된 뇌에 관한 논문을 모아 놓은 책 등이 언뜻 떠오릅니다. 고등학교때부터 구입했던 권당 300원짜리 삼중당 문고와 그 이외의 책들 수 백권을 모두 다 내다 팔아버리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첫번째 '분서(갱유)'였죠. 두 세번 더 '분서'를 하면서도 자크 아다마르의 '수학분야에서의 발명의 심리학'과 알버트 앨리스의 '합리적 정서치료' 두 권만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갖고 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메타학습법을 공부하면서 이해와 기억의 학습효율을 최대화하는 <기억학습법>을 정립하는 데 가장 큰 공을 들였습니다. 고등학교때 시작해서 대학생이 될 때까지 훈련했던 속독이 심도있는 책 읽기, 즉 정독을 방해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정독법을 익히려고 애썼습니다. 정독법을 익혀야 속독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늦게서야 알게 된 것이죠. 이렇게 나이 50을 넘은 지금까지 나와 책은 '금붕어와 물'같은 관계였습니다. 

 

로대 로마의 정치인이자 웅변가인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를 살짝 바꿔 말하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영혼 없는 육체일 뿐이다"라고도 할 수 있겠죠. 더 나아가 "의미가 없는 인생은 내용 없는 책과 같다"라고도 읽어 봅니다. 책과 놀며 씨름하며 50을 넘다 보니 내가 책이고 책이 나인 것 같습니다. 내가 책이라면, 오늘도 난 나의 책에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요? 마지막 책장을 덮을 즈음에 꼭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은 구절을 바로 오늘 썼기를 바랍니다.